The sentence of the Court is therefore as follows.

Dear. 2026. 7. 17.



  차가운 벽과 음산한 공기, 무겁게 내려앉은 침묵 사이로 우리는 걸었다. 추워? 아니. 짤막한 대화. 바네사 하트 애쉬그린은 철저하게 일말의 소통마저 차단해내고 있다. 포레스트 렌 유로페아와 자신이 유일하게 공통분모가 생기는 순간이 더없이 불쾌했으므로.

  영국, 펜튼빌 교도소—흉악범까지는 아니기 때문에 왕립 교정국에는 가지 않았다고 들었다. 바네사는 개인적으로 배부른 처지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죄에 대해 더 엄한 벌을 받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길은 잘 모른다. 초행길인 점은 같았으니까. 그러나 바네사는 포레스트보다 두어 걸음 앞서 걸었다. 길을 안내하는 교도관에 조금 더 가까운 위치에서. 자녀 분들이세요? 교도관이 물었다. 네. 짤막하게 답했다. 많이 닮은 남매시군요. 그 말에는 응답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바네사는 포레스트를 대화에서 배제시켰다.

Not responsibility, but fabrication.
Not truth, but obstruction.
The complainant has suffered profound financial loss.
She has suffered equally profound personal injury.
She now bears the burden of raising your child alone.
Although this Court cannot sentence you for adultery, it is entitled to recognise the devastating consequences flowing from the dishonest course of conduct that accompanied it⋯.

  미리 읽은 자료에 따르면 그가 최초의 선고를 받은 이후 12년 정도가 흘렀다. Obtaining Property by Deception, False Accounting, Interference with the Due Administration of Justice—기망으로 재산 취득, 사법 절차에 대한 중대한 침해—. 분명 최대 9년 내외와 민사 책임이 따르는 편이 적절하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수감되어 있는 것이라면 필시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른 것이겠지. 가사법원의 심리까지는 넘어가지 않았으니 더한 형량이나 책임이 부과되지도 않았을 테고. 다시 한 번 바네사는 내용을 곱씹었다. 제 어머니지만 법을 참 교묘하게 다룰 줄 아는 여자다. 불륜을 저지른 사실 하나를 묻는 것이 아니라 아니라 사기와 기만죄를 들어 벌할 생각을 하다니.

  면담실, 두 사람이 나란히 자리에 앉았다. 저 너머로 문이 열리고, 짙은 초록색 머리카락을 짤막하게 자른 한 남성이 안으로 들어왔다. 아마 조금만 더 짧은 길이였다면 녹발이라고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흐릿한 수염 자국, 형형한 검은 눈동자의 눈빛. 깡마른 몸과 강제로 묶인 손목. 분명 순하게 구는 사람이라는 의미는 아닐 테다. 인상은 전형적인 40대 후반의 백인 남성. 포레스트와 바네사는 눈빛을 교환한다. 머글이군. 그래. 간단한 사실 확인 절차.

  긴 시간은 허용되지 않았다고 들었다. 분명 속으로 아주 많은 이야기와 상상을 하며 이곳까지 당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답이 나오지 않는 데에는 분명 시간의 압박 탓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두 입술이 들러붙어 떼어질 기미를 안 보이는 지금의 사태를 설명할 수가 없다. 바네사는 교도관이 내미는 물 한 잔을 받아 마셨다. 이어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담백하게 전달했다.

  “이 사람이 우리의 아버지야, 유로페아. 이 사실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묻기 위해 나의 어머니가 12년 전 소송을 제기했지. 너희에게는 더러운 머글과의 결혼이었다는 한 줄 감상으로 남았겠지만⋯⋯.”

  바네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당신을 내려다보며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너도, 결국은 ‘더러운 피’인 거야.”

  도망치듯 미국인이 되어야 했던 우리는? 터전 잃은 영국인 두 명이 시카고에 자리를 잡고, 허드렛일을 하며 색소폰이나 부는 우리의 삶은. 한 사람의 장난에 약한 사람은 하릴없이 삶이 무너진다. 세상이 그를 보호하는 방식은 지나치게 소극적이다. 여전히 약자는 차별받고 있다⋯.

  생각을 그만뒀다. 그의 죄를 물거나 용서하는 것은 자신의 권리가 아니다. 나가볼게. 바네사가 미련 없이 돌아섰다. 한 문장 형제에게 건넨 것만이 바네사가 이곳에서 건넨 유일한 대화였다. 이어 교도관에게 짤막하게 사실을 전달하는 목소리만이 들렸고, 쾅,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만이 공간을 메웠다. 그 와중에도 눈앞의 저 남자는 아무 말 없이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을 것이 틀림없다. 모든 모습이 상상됐다. 절로 짜증이 치솟았다.

  가끔 대화를 단절시키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방법일 때가 있다.
  그러나 근본은 아니다. 더한 갈등을 낳는 열쇠뿐에 불과할 것이다.

  아버지, 형제, 불쾌했다. 어느 쪽이 자신의 혐오를 불러일으키고 있는지 영 알 수가 없었다. 차라리 잊는 편이 낫겠어⋯. 바네사가 이를 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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